1842년경 파리에서 공부하던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휘발성이 극도로 높은 액상 폭탄 니트로글리세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건설 업체용 폭탄 제조업자였던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파리에서 학업을 마친 뒤 아버지가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 해군이 사용할 폭발 장치를 만들고 있던 러시아로 갔다.
전쟁이 끝난 뒤 알프레드, 동생 에밀, 아버지는 스톡홀름에 실험실을 열고 니트로글리세린을 연구하다가 1864년 실험실이 폭발해 에밀과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불행도 노벨의 연구를 막지는 못했다.
1866년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백악질 퇴적함에서 얻는 규조토 가루와 혼합하면 안전하게 취급할 수 있는 폭약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벨은 이 새로운 폭약을 다이너마이트라고 했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가 건설업과 광업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포 제작 업체인 보포스의 사장이기도 했던 노벨은 그 연줄로 군에도 다이너마이트를 팔았다.
1888년 노벨이 사망했다는 오보가 나가자 프랑스의 한 신문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부고가 실렸다. “죽음의 상인이 죽다” 그리고 부고의 첫 줄은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앗아가는 방법을 발견한 알프레드 노벨 박사가 어제 세상을 떠나다”였다.
노벨은 자신이 다이너마이트을 발명해 전쟁 국가들이 적을 좀 더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게 만들어 준 무기 제작자로 먼저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에 경약했다. 노벨은 자신의 평판을 개선하고 세계에 도움이 될 유산을 남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1896년 노벨이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세상을 떠난 후 유언집행인은 ‘죽음의 상인’이 물리, 화학, 의학, 문학, 세계 평화 분야에 가장 의미 있는 공헌을 한 사람에게 매년 상금을 지급하는 재단을 세우도록 900만 달러의 유산을 남겼다고 발표했다. 이 재단은 1901년 첫 번째 노벨상을 수여했다.